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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고 메타적인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by goldidea 2025. 6. 22.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표지 이미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표지 이미지입니다>

 

 

우주적 스케일의 상상력과 체제에 대한 비판까지 담은 소설

모든 문학 작품이 그렇지만, SF 장르는 특히나 상상력이 중요한 작품입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독특한 상상력이 충만한 작품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라는 장르의 선입견을 깨는 작품들을 발표한 작가입니다. 저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대표작인 <노변의 피크닉>도 좋아하지만,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이라는 작품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상상력 자체가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우주적인 스케일이라, 그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참 좋아합니다. 꼭 추천드립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SF 장르가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실 거예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Definitely Maybe)>은 스트루가츠키 형제(Arkady and Boris Strugatsky)가 1974년에 발표한 철학적 SF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한 이론물리학자가 직면하는 이상 현상을 다루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의 자유 의지, 과학의 한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은유로 읽힙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페트로프라는 천체물리학자로, 그는 우주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가설을 연구하던 중, 설명할 수 없는 연쇄적 방해를 겪게 됩니다.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 우연히 만난 사람들까지 끊임없이 페트로프의 연구를 방해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페트로프는 처음에는 이러한 일들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저지하려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는 동료 과학자들과 이 현상에 대해 토론하며, 이 모든 일이 인간이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작동하는 일종의 '자기 조정 시스템'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도달합니다. 즉, 인간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에 접근하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페트로프가 연구를 계속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과, 그가 점점 광기와 불안 속으로 빠져드는 심리적 변화를 깊이 있게 묘사합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열려 있으며, 페트로프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 혹은 단순한 망상에 휘말린 것인지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합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전통적인 SF와 달리 우주 전쟁이나 외계인의 등장 없이, 인간 내면과 사회적 시스템, 그리고 인지할 수 없는 외부 개입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소련 체제의 검열을 교묘히 피해 가면서, 체제 비판적이고 존재론적인 메시지를 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과학적 진보의 의미, 인간 존재의 한계, 그리고 자유 의지의 진정한 정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던지는 철학적 SF로 평가됩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디까지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독자들의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 소설입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방해들이 실제로 더 큰 질서의 일부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미를 느낍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혼란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품을 읽는 내내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외부의 통제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경험한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독자들은 이 소설이 단순한 음모론적 전개가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는 '불가해한 저항'에 대한 은유임을 인지하며, 점점 더 깊은 몰입을 느낀다고 합니다. 많은 독자들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진짜 무엇이 주인공을 방해한 것인가'라는 의문에 오랫동안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다른 작품인 <노변의 피크닉(Roadside Picnic)>처럼, 독자에게 해답을 주지 않고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일부 독자들은 이 작품의 진행 속도가 느리고, 과학 이론과 철학적 대화가 많아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특히 소련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은유와 상징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디까지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며, 이 때문에 다수의 독자들은 두 번, 세 번 재독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점점 광기에 휘말리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 자신도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과 통제 불능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평가합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지만, 가볍게 읽히지 않는 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소설로 평가됩니다.

평론가들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을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이고 메타적인 소설로 평가합니다. 특히, 이 소설이 1970년대 소련이라는 엄격한 검열 체제 아래에서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 발전, 인간 자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제력이라는 위험한 주제를 교묘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문학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단순한 SF가 아닌, 사회 구조, 인간 심리,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동시에 다룬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억제력'이 실제로 소련 체제의 검열을 은유하는 것인지, 혹은 우주적 질서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지식의 한계'를 넘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적 불안과 좌절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렸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주인공 페트로프가 점점 광기와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묘사는, 독자뿐 아니라 문학 비평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됩니다. 또 다른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스릴러적 긴장감과 실존적 고민을 동시에 전달하며, 일상의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초월적 위협을 섬세하게 포착했다고 설명합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설이지만, 평론가들은 오히려 이 작품이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철학적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강조합니다. 일부는 이 작품이 <노변의 피크닉(Roadside Picnic)>보다 더 직설적으로 '과학적 진보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다만, 평론가들은 이 소설의 열린 결말과 모호한 전개 방식이 독자에 따라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은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당시 정치적 제약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SF 장르를 통해 성공적으로 전달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러시아 SF 문학을 대표하는 형제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

스트루가츠키 형제(Arkady and Boris Strugatsky)는 20세기 러시아 SF 문학을 대표하는 형제 작가입니다. 형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Arkady Strugatsky)는 1925년에 태어났으며,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Boris Strugatsky)는 1933년에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1950년대 후반부터 공동 집필을 시작하여, 이후 약 30년간 러시아 SF 문학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대표작으로는 <노변의 피크닉(Roadside Picnic)>, <소외된 자들을 위한 도시(The Inhabited Island)>, <달리는 사람들(The Ugly Swans)>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Definitely Maybe)>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과학적 상상력을 넘어서, 철학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SF 장르를 통해 심도 깊게 풀어내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특히 인간 존재, 자유 의지, 사회 체제, 윤리적 딜레마 같은 주제를 주요 화두로 삼았으며, 소련 체제 하에서도 체제 비판적인 내용을 암시적으로 전달하는 데 능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소련의 검열을 피해가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 끊임없이 도전하였으며, 많은 작품에서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고의 여지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형 아르카디는 언어학과 번역에도 능했으며, 동생 보리스는 천문학자로서 과학적 배경 지식을 작품 속에 자주 녹여냈습니다. 이러한 전문성 덕분에 이들의 소설은 사실적인 과학적 설정과 인간 심리의 복합적 묘사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소련을 넘어, 현대 유럽과 미국에서도 널리 번역 출간되었으며, 특히 <노변의 피크닉>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스토커(Stalker)>로 재해석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1991년과 201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철학적 SF의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들의 작품은 SF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